[바람의 검심 -추억편] 1997년작품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무엇입니까?'하고 누군가 물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먼저 이 작품이 떠오르고 이후로 줄줄이 몇작품이 나온다. 이 작품을 보기 전까진 [바다가 들린다]가 최우선이었다.) 2000년 겨울에 동아리 방에 혼자 있게 되었을 때 캐비넷을 뒤지다가 이 비디오를 발견했다.(우리 동아리는 만화동아리) 밤에 불을 다 꺼두고 혼자서 봤는데, 혼자서 보는 만큼 집중이 엄청나게 잘 됐었다. 그 추운날, 혼자서 어두운 곳에서 봐서일까, 밝은 날 여럿이서 떠들며 보는 거보다 인상이 깊게 남은 듯 하다. 켄신은 이 작품이 처음이었고, 만화책을 본 적도 없으며, TV 시리즈는 얼마전 애니원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접했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대충 분위기는 알고 있었는데, -추억편-의 분위기는 내가 그 전에 접했던 켄신 주제곡의 분위기와 너무 달라서 상당히 놀라웠다. 작품을 보기 전에 TV 시리즈 음악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노래는 굉장히 발랄했었기 때문이다.
영상, 음악, 내용이 작품은 이 세가지가 모두 좋다. 처절한 검투신이 많은데, 그 때 깔리는 역동적인 혹은 장엄한 분위기의 연주곡들이 죄다 좋다. 내용은 켄신의 왼쪽뺨에 십자상처가 생기게 된 사연을 다뤘는데, 추억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슴아픈 울림이 있다. 그리고 영상, 영상, 영상. 결정적으로 영상이 너무 좋았다. 속도감 있는 검투신이 너무 좋다. 사실 나는 칼부림(=_=)만화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추억편은 이런 나의 취향에 100% 부합하는 작품이다. 검붉은 피가 흩날리는데도 불구하고 화면을 보며 연신 '와, 대단하다. 너무 멋지다' 그러고 앉았으니, 어찌 보면 사람이 조금 이상하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태 내가 본 검을 다룬 작품들 중에서, 추억편 만큼 멋진 검투신은 없었다. 이 영상은 도저히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꼭 실제로 봐야만 한다. 이런 화면을 좋아한다고 해서 현실에서도 그럴 거라고 생각진 마시길. 현실에선 다른 사람이 흘린 코피만 봐도 너무 무섭다.
이 작품은 볼 때마다 우는데, 어제는 눈물을 흘리는 정도로 끝난게 아니라 엉엉 울어버렸다. 토요일에 더빙판을 재방송 해주길래 기회다 싶어서 녹화를 하고는 어제 한번 봤는데, 엉엉 울어버린 것. 왜 엉엉 울었을까. 다 큰 처자가 일요일밤에 혼자 애니메이션 보다가 엉엉 우는 모습을 상상해보시오. -_-; 하지만, 토모에의 '아나타(부부사이에선 여보, 당신이란 의미)'보다 더 강렬했던 '여보'란 그 말이 너무너무 가슴 아팠다.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켄신 왼뺨의 세로상처에 그 상처를 다독여주듯 가로 상처를 내고 죽어버리는 토모에. 아이고.-_ㅠ 우는 소리는 그만. 글솜씨가 없는게 한스러울 따름이다.
성우 이야기
추억편은 올해 처음 더빙이 되어서 이제껏 내내 일본어판만 봤다. 보기만 한게 아니라 녹음해서 듣기도 수십번=_=;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일본판에 굉장히 익숙하다. 그 억양, 말소리, 대사, 외울 정도다(라는 것은 조금 과장;). 지난 추석때 애니원에서 더빙판을 방영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찌나 보고 싶던지, 애니원 안나오는 것을 한탄했었다. 지금이라도 나와줘서 참말이지 다행이다. TV 시리즈의 켄신은 구자형님이신데, 추억편에선 엄상현님이 켄신을 연기한다고 해서 그게 참 궁금했다. 게다가 에니시가 김영선님이라니.. =_=; 그 어린 동생을 영선님이 연기하신단 말인가? 어제 궁금하고 궁금하고 또 궁금했던 그 더빙판을 드디어 보게 된 것이라!!!!
우선 켄신은 원판에 비해서 가늘고 하이톤. 일본판에선 스즈카제 마요라는 다카라즈카 출신 배우분이 켄신을 연기했다. 그래서 의도된 저음이었는데, 정말 남자인 엄상현님의 목소리는 가늘고 하이톤이었다. 워낙 일본판에 익숙해진 뒤라, 처음엔 너무나도 어색했다. 켄신의 얼굴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나와야할 것 같은데, 저리 가는 목소리가 나오다니. 하긴 처음에 TV 시리즈를 봤을 때도 자형님 목소리가 익숙치 않아서 조금 이상하긴 했다. 아직까지 '그래! 저 목소리야!'싶은 켄신 목소리를 찾을 수가 없다. 이이즈카는 별달리 어색하지도 않았고, 성완경님의 얄미운 연기가 참 좋았다. 그리고 카츠라는 정말 점잖았다. 일본판의 세키 토모카즈의 카츠라 연기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양석정이라는 성우분의 연기도 되게 좋았다. 단아하고 깔끔한 목소리. 토모에는 일본판보다 더 차분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 들으면 들을수록 윤미나님의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 신타(어릴적 켄신)는 손정아님이셨는데, 신타와 켄신 사이의 그 괴리감이라니.. =_=; 아무래도 원판에선 스즈카제 마요가 신타(히코 스승에게 검술을 배우던 시절을 가리킴)도 연기했고 켄신도 연기했다보니 그것에 익숙해서 그런가보다. 신타는 그렇다치고, 어떻게 신타를 감싸주던 그 여자도 손정아님이냐. 손정아님 정말 다역하셨다. -_- 에니시는 너무 성숙했어. 물론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는 최유기의 손오공역에 익숙해서 그 목소리만은 별 어색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쪼오금만 더 어린 목소리면 좋았을텐데 싶어서 아쉽고, 영선님이 켄신을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싶은 궁금증도 남았다. 키요사토도 영선님이 연기하셨는데, 정말 좋았다. 하지만 키요사토의 마지막 대사 '시누와케니와이카나이'라는 그 대사와 그 말소리에 너무 익숙해서인가, 영선님의 죽어가는 연기보다는 일본판의 그 연기가 더 가슴을 때리는 것 같다. 카츠라의 친구인 타카스기 연기도 정말 좋았다. 오인성님의 색다른 면모를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사이토. 일본판에서 사이토는 정말 말소리에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목소리만으로도 '믿음'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나는 김환진님의 연기와 목소리를 좋아하긴 하는데, 추억편에서 김환진님이 연기하신 사이토는 '못된' 느낌이 많이 났다고나 할까. 왜 그런가 모르겠다. 그냥 대충 생각나는대로 간단히 적어봤다. 애니메이션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바로 성우라고 생각한다. 더빙판을 한번 본 지금 상태에서 이야기하면, 아직은 일본판이 더 가슴때린다.
그나저나 요것이 DVD로 발매가 된다고 하네! 갖고 싶다!!!!! 기다렸단 말이지. 후후후후.